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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따뜻한 개성파가수 한홍
 

한홍은 44세 생일을 바로 자신의 전국순회공연에서 보냈다. 이렇게 특별한 날 무대에는 특별초대손님이 나타나지 않다. 또한 어쩌다가 펼친 순회공연이지만 거의 홍보하지 않다. 최근 한홍의 마음을 사로잡은것은 음악회가 아니라 자선활동이다. 그는 사람들이 한홍에 대해 말할 때 “자선가”라는 호칭을 “성악가”앞에 놓기를 희망했다. 전자가 더욱 큰범위의 영향력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또한 그는 확실히 자기 명의로 된 기금회를 높은 단계로 이끌었다. 이런 지금이 바로 한홍이 명망이 높을 때이고 제일 득의양양한 시기이다.

자선활동으로 존재감 느껴
개성파가수 한홍(韩红)은 남을 도와주는 그 느낌을 아주 좋아했다. “내가 강해진후에야 비로소 남을 도와줄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되였다. 남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나는 존재감과 즐거움을 느꼈다.”
2011년, 한홍과 그의 재단에서는 “백인지원”이란 공익항목을 내오고 해마다 대도시의 큰병원 의사들을 청해 약품을 가지고 의료자원이 결핍한 지방에 가서 자선치료를 해주군 했다. 이미 서장, 청해, 신강 등 지를 돌아다녔고 금년에는 자선지를 귀주로 정했다. 220명으로 조직된 이번 자선대오는 북경에서 출발하여 귀주로 가서 자선치료를 해주었다.
일찍 명성을 떨친 이 녀가수는 점점 더 많은 정력을 자선사업에 쏘아붓고있다. 한홍은 가수이면서 전국정협위원이고 공정문공단 부단장이다. 하여 그의 많은 친구들이 연예계, 정계, 상업계, 군대에서 활약하고있고 따라서 해마다 적지 않은 연예인, 유명인사들이 그의 자선대오에 참가하고있으며 협찬측은 “량회”에서 면목을 익힌 기업가이다. 자선치료를 준비하는 느낌을 좋아하는 한홍은 “본보기”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있다.

부대의 기운
16살에 입대하고 31살에 전역한 한홍은 7년후에 특별초청으로 또다시 입대하여 공정문공단 부단장으로 되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한홍의 온몸에 뿜어나오는 부대기운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한홍은 타고난 연설가이다. 총명하고 론리가 뚜렷하며 목소리나 몸짓에 호소력이 충만할뿐더러 적절한 시기에 알맞는 유모아도 할줄 안다. 바로 이런 연설능력과 정의롭고 호방한 기질이 합쳐 그의 지도력을 형성한것이다. 또한 이런것들은 그로 하여금 부대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생기를 띠게 했다. 16살에 갓 입대했을 때 한홍은 “강한 집체주의 영예감”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누가 중대가 나쁘다고 하면 그녀는 선뜻 나서서 집체영예를 수호했다.” 그는 국가에도 제일 충성스러운 마음을 품고있었다. 일찍 그는 기부했던 한 학교에서 애들한테 강의할 때 추호의 머뭇거림도 없이 칠판에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고 썼다.
그리고 한홍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신심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가수다》 시합에서 한홍은 거의 번마다 시청자들의 투표률 1,2위를 받았다. 어쩌다 두번 거꾸로 2위를 했을 때 그는 무대뒤에서 “누구도 지고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즐길수 있기에 참가했다”, “나는 응당 지지 말아야 했다. 나 자신의 노래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잘 알고있다” 등 엉뚱한 말들을 늘여놓았다.

동년시절에 싹튼 착한 마음
한홍은 6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9살때 어머니가 재가하게 되면서 북경에서 얼음과자를 파는 할머니와 삼촌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다.
“당시 나는 눈치를 볼수밖에 없었다. 내가 앞으로 남의 집에서 생활해야 된다는것을 깨달았으니깐. 옆에 있는 분들이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와 삼촌이라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밤중에 할머니집에 도착한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은 비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것이다. 할머니가 밤중에 웬 비자루질인가고 묻자 한홍은 “나 일할줄 알아요. 나 일 잘해요”하고 거듭 말했다.
“그때 나는 할머니한테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했다. 할머니한테 잘보이고싶어서였다.” 할머니와 삼촌은 그를 껴앉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너한테 일을 시키지 않을것이야. 그리고 집에 돈이 있으면 꼭 고기를 사서 너한테 먹일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에 할머니가 세상을 뜬후 한홍은 우울증에 걸렸다. 그는 거의 3년이나 두문불출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날마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의의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여 그는 문천에 가서 재난구제에 나섰고 후에는 기금회를 설립하고 해마다 사람들을 조직하여 빈곤지구에 가서 자선치료를 해주었다. 그가 제일 보고있을수 없는것은 아이들과 로인들이 고생하는것이였다. 하여 온갖 방법을 대서라도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것은 “아이는 바로 나였고 로인은 바로 할머니”였기때문이다.

새로운 꿈
한홍은 자신을 연예계의 “착한 아이”라고 자칭했다. 종래로 연회에 참가하지 않았고 밤 10시후에는 집문을 나서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밤생활”은 길옆에서 꼬치구이를 사먹는것이 고작이였다.
근 2년래 한홍이 연예계에 특별히 실망하고있는것이 있다면 바로 “좋지 않은 일, 폭로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례를 들어 마약흡입을 놓고 말할 때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이는 용서받을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이런 일은 애초에 발생하지 말아야 될 일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나이와 미래를 놓고 볼 때 용서받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즉 용서받지 못할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홍은 한차례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누가 감히 자신은 평생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장할수 있는가? 만약 한 아이가 잘못을 범했을 때 우리가 그를 거부하고 랭대한다면 그 아이의 자존심은 영원히 상처를 입게 될것이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그 아이를 너그럽게 감싸주고 사랑해주는것이다. 나는 여러분들도 나처럼 끝까지 사랑을 주기 바란다.”
한홍은 자기도 이젠 나이를 먹은것 같다며 웃었다. “이전에 나는 흑백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마주하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질타할수 없다. 응당 그들에게 새롭게 태여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신뉴스에 따르면 “한홍예술학원”이 명년 9월에 정식으로 개학하게 되는데 이는 소수의 개인이름을 딴 교육부산하의 정규적인 학교이다. 때가 되면 그는 자신이 오래동안 동경하던 새이미지 교육가로서의 모습을 보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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